당구풍월(撞球風月)

오늘 문득 출근하는길에...

집 앞에도, 사무실 문을 나서도 즐비하게 늘어선 당구장들을 보며...

씩!! 하고 한번 웃어본다.

 

당구를 접한 지 어언 삼십년!

“서당 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堂狗風月)”는데

당구매니아라 자칭하는 나는 언제나 풍월을 읊을 수 있을까?

 

옛날에 비해 당구장의 인식과 풍경도 많이 바뀌었고,

이제는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실내스포츠가 당구이리라.

물론 그 곳이 삶의 터전인 분들도 많겠지만

매니아나 동호인들에겐 제2의 공간이 아니라 일상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잠시 본업에 지쳐 기분전환이나 재충전을 하기위해 ..또는 참새와 방앗간의 관계로!

퇴근 후 친구나 동료를 만나 가볍게 한게임 할 수 있는 곳....

그곳은 분명 적절한 긴장감을 주는 진검승부의 결전장이자 아기자기한 기량을 맘껏뽐낼 수 있는 우리들의 무대임에 틀림없다.

한 샷 한 샷이 쏴~~~한 페파민트향의 청량제!

 

그러나 아무리 신사도로 치장해도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순간

솟아나오는 감정의 변화를 막는다는 것은 아무튼 쉬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일순간 검은 독거미 자넷리의 눈초리을 닮아가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괴성과 탄성!

때로는 박수로...때로는 책상을 두드리는 소리로 선수에 대한 칭찬의 배려를 배우기도 한다.

 

당구는 승부의 게임이다.

직사각형의 당구대는 어떤 이에겐 복서의 링이요

어떤 이에겐 댄서의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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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공은 수구와 적구로 분류되고

기다란 큐는 장수의 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수구와 적구가 부딪치는 경쾌한 파열음은

분명 전장의 쇳소리와는 다르다.

 

승부사에겐 싸움터일 수도 있지만

삶의 피로함을 달래려는 필부에겐 놀이터이기도 하다.

 

자존심이 걸린 승부도 있지만

함께하는 이와 교감을 나누는 즐거움과 여유 또한 새로운 맛으로 듬뿍 담겨 있다.

 

지긋지긋한 수학과 물리학의 이론보다도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의외성이 있어 좋고 그것을 즐기는 이들의 익살스런 몸짓과 아우성이 있어 더 더욱 감칠맛이 있다.

 

당구는 우리네 삶의 이정표이기도 하다.

치는 데로 구르는 정직성!

강약의 적절한 조화를 요구하는 스트록과 삿!

조금만 방심해도 난무하는 “삑”과“쫑” !

수천 번을 반복해도 정립된 스트록을 구사하지 않으면 빗나가는 공!

 

큐를 떠난 공은 매우 정직한 코스를 그리면서 한 치의 타협도 없이

선수가 큐로 지시한대로만 굴러가기 마련이다.

아!!이런 오묘한 진리가.....

 

뿌린 대로 거둔다고나 할까?

세상사만큼이나 다양한 변화와 의외성......

그러나 그 만큼 솔직하다.

 

때론 예상치 못한 재수 득점으로 자기도 모르게 쾌재를 부르기도 하지만

신중을 기한 회심의 일타가 “삑”하고 엇나갈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밀려오는 허망함도 견디어야 하고,

잘 배치된 포지션 공을 가볍게 쳤건만 “쫑”소리와 함께 빗나간 허탈감

역시 묵묵히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한다.

 

세상사가 모두 희로애락이 공존하기 마련이고,

승과 패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유로움을 가지고 생각한다면

이제“당구대는 복서의 링이 아닌 댄서의 무대”가 되리라.

 

누군가가 그랬다.“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고

여유를 가지고

때론 진지하게...

때론 우아하게...

때론 부드럽게...

때론 총알보다도 더 강하고 빠르게...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브라보”를 외치자!!

이것이 진정한 고수다.

 

나만의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곳.

난 오늘도 삼색의 공들이 아름답게 흐르는 무대로 향한다.

 

이제30년이 넘었건만

난 언제나 풍월을 읊을 수 있는 그 강아지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