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최고의 루키 - 3쿠션 엄상필 선수
자그마한 체구에 날카로운 눈빛, 작은 체구이지만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 넘치는 스트록은 보는 관중들로 하여금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한때는 생활체육의 유명한 스타로 전국 동호인의 경계인물이 되기도 했던 그는 선수 입문 1년도 채 안되어 MBC-ESPN 큐스포츠 4강에 오르며 혜성과 같이 등장한다.
그 선수의 이름은 엄.상.필.
기자는 엄상필 선수를 만나기 위해 1월의 어느 날 용인시 단국대에 위치한 제우스당구클럽(대표 이종주)을 찾았다. 1977년 8월생인 엄상필 선수는 그 또래들이 그랬듯이 선생님들의 눈치를 피해 다니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당구장을 찾았다고 한다. 동네 형들을 따라 처음으로 가본 당구장은 엄상필 선수에게는 완전히 신기한 세상이었다. 당구장 분위기도 그랬지만 긴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는 하얀색과 빨간색 공은 시선을 고정시켰으며 결국 당구의 세상에 빠지게 만들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 당구장을 들락날락한 결과 2년 만에 당구수지 300이 되었고, 한창 공부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당구가 너무 치고 싶은 나머지 결국 공부를 멀리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가출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니 엄상필 선수의 당구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도 말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열정 때문인지 엄상필 선수가 살고 있던 지역 내에서는 쉽게 엄상필 선수를 이길 수 없을 정도로 동네에서는 소문이 자자했고, 군 제대 후에는 지금의 성남동호회에 가입, 막강한 전력의 핵심멤버가 되었다.
백화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모아 놓은 돈으로 당구장까지 운영을 한 엄상필 선수는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당구장에서 연습에 열중하며 각종 생활체육대회에 출전, 막강한 실력을 선보이며 수차례 입상을 하였다.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다니던 엄상필 선수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택한다. 그것은 바로 대한당구연맹에 선수로 등록한 것이다. 2006년 종로구청장배 국민생활체육 당구대회를 마지막으로 동호인 활동을 접고 2007년 서울당구연맹에 정식 선수로 등록한 엄상필 선수는 또 다시 새로운 세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수많은 쟁쟁한 선수들과 활동을 한 엄상필 선수는 사부라고 할 수 있는 이충복 선수를 만나게 되면서 당구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고, 결국 1년도 채 안 되어 ‘MBC-ESPN 큐스포츠 강화동주향배 전국당구대회’에서 4강에 오르며 기염을 토했다. 그 당시 8강에서 류진희 선수에게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오른 엄상필 선수는 이홍기 선수와 파워풀한 경기를 보여주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를 펼쳤다. 결과는 비록 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엄상필’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린 아주 뜻 깊은 대회였다.
그 이후 각종 대회에서 줄곧 흔들림 없는 실력을 보여주다가 2008년 춘천에서 열린 故 이상천 추모대회인 ‘MBC-ESPN 큐스포츠 상리배 대회’에서 다시 4강에 오르며 변함없는 실력을 다시 보여주었다. 엄상필 선수는 선수 등록 이후 마음가짐이나 행동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별 신경을 안 쓰던 부분들이 선수가 되고 나니 시합장 외에서도 선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많은 노력들을 했다고 하니 엄상필 선수의 됨됨이를 엿볼 수 있다.
바깥돌려치기(일명 우라마와시)가 주특기인 엄상필 선수는 2008년 수원에서 열린 월드컵세계대회 국내예선 통과를 내심 기대를 했지만, 불의의 패를 당하면서 본선무대에 오를 수 없게 되었다. 잠시나마 상심했었다는 엄상필 선수는 아직 젊기에 또 다시 큐를 잡고 2009년을 향해 연습에 몰두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엄상필 선수!
올해에는 김경률·강동궁 선수 등 기라성 같은 스타플레이어를 벽을 뛰어 넘어 2009년 월드컵 무대에서는 그의 서글서글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