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선배들이 나를 잡탕 당구라고 놀려댄다. 내가 스누커와 잉글리시빌리아드를 쳤었고, 지금은 포켓볼을 치기에 하는 말이다. 하지만 어떤 당구면 어떠랴? 내가 당구를 좋아하고, 좋은 선후배 선수들과 어울려서 당구계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신이 나는 것을... 앞으로도 나는 당구와 어울려 평생을 살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 동네 선배와 함께 처음 당구장에 가서 처음 4구를 접하게 되고, 그 후 당구에 빠져 틈만 나면 친구들과 당구장에서 살았던 나는 고교 3학년 때 같은 또래에서 “3쿠션 지존”에 올랐다. 대학 때 학교 앞 당구장에서 열린 3쿠션 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 이후, 당구에 한번 도전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나는 학교를 휴학한 후 본격적으로 당구를 배울 곳을 찾았다. 우연히 당구를 가르쳐 주는 학원(아카데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찾아갔고, 지금의 박승칠 선수(현 대한당구연맹 포켓이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의 당구인생을 시작되었다.  

3쿠션을 배우려 찾아 갔으나, 박승칠 선수가 연습에 열중이던 스누커 당구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었고, 박승칠 선수가 출전하는 “아시아스누커선수권대회(홍콩)”를 참관한 후, 엄청난 시합규모와 선수들의 기량을 보고 놀랐다. 그 순간 나도 스누커 선수가 되어서 이런 멋있는 경기장에서 시합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박승칠 선수의 지도 아래 태국으로 전지훈련도 다녀오고 나름대로 전력을 다해 스누커에 열중했다. 그리고 2001년 3월 드디어 부산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스누커와 잉글리쉬빌리아드 두 종목에 전부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영광을 맛보았다.

그러나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나는 국제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스누커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세계 수준인 아시아선수들과 우리의 실력차가 너무 커서 최하 5년 간 국제대회 입상은 꿈꾸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자, 당구가 싫어지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3년 10월  국방의 의무를 하기위해 공익근무요원에 입대하게 되었고, 일정한 출퇴근 생활로 무료하던 나는 당구가 그리워졌다. 다시 박승칠 선수를 찾아간 나는 포켓볼로 전향을 했다. 그동안 스누커 당구에서 기초를 착실히 다졌기에 포켓볼에 적응하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침에 7시에 출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한 후, 대여섯 시간을 연습에 열중하고 지쳐서 잠이 들고 다시 반복되는 생활은 큰 고역이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당구선수로서 인생의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연습장으로 발길이 향하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포켓볼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위에 입상하고 여러 차례 4강에 진입하자 자신감이 샘솟았다. 전국대회에서 우승하고. 아시아대회 선발전과 세계대회 선발전에서 국가대표로 선발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당구선수로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순간이 너무 즐겁다.

2000년  6월   선수등록   2001년  국민생활체육당구연합회장배 스누커 부문 우승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스누커,잉글리쉬 국가대표 출전
2004년  풀매니아 전국9볼오픈대회 3위
2004년  故 이상천 회장배 전국9볼오픈대회 3위
2005년  산미구엘 아시안포켓볼투어 4차선발전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