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부산 벡스코 영남권대회 결승전에서 올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김경률 선수에 맞붙어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경기를 펼치고 있는 신인이 있었다. 결국 김경률 선수에게 아깝게 패해 첫 우승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어느새 그의 이름은 다크호스로 각인되었다.

김진열 선수는 아마추어이던 지난 2004년 4월, “제3회 서울연맹회장배 아마추어국제식3C대회”에서 우승한 후 곧 바로 선수등록을 했다. 우수 신인 선수를 확보하기 위해 대회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선수 등록비 30만원을 면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이제 만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의 기량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1974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진열 선수는 대개의 선수가 그러하듯이 고교 3학년 때 친구들과 호기심에 처음 당구장에 출입하게 되었고, 급속도로 당구와 가까워졌다.  고교 졸업 무렵에는 4구 500점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구에서 이승진 선수와 이재명 선수 등에게 당구를 배우며 당구와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은 후, 서울로 이사온 김진열 선수는 고덕동 김철민당구클럽에서 국제식 3쿠션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제주도에서 사업을 하게 되어 바쁜 일정 때문에 당구를 더 이상 칠 수는 없었다.

정신없이 몇 년을 보내고 우연히 김철민 당구클럽 앞을 지나던 김진열 선수는 김철민 선배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잊었던 당구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해 4월 “제3회 서울연맹회장배 아마추어 국제식3C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5월 서울당구연맹에 선수등록을 하게 된다. 이후 서울당구연맹 월례대회에서 기라성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준우승과 3위를 차지하며 자신감도 얻었고, 선수등록 5개월 만에 전국대회 규모의 “당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국투어 군포대회” 준우승, “고 이상천 추모 춘천오픈대회”에서 공동5위를 차지하며 김진열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2005년 “부산연맹회장배 전국대회‘에서 공동5위를 기록하더니 7월 ”부산 벡스코 영남권투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나 본인은 아직은 우승도 한번 못해본 애송이일 뿐이라고 겸손해 한다.

더욱 열심히 연습하여 빠른 시일 안에 꼭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쥔 김진열 선수는 현재 삼성동 뉴코리아에서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해외 투어 경기에 진출하고 싶다는 김진열 선수는 김철민, 최제동, 황득희 선수를 존경하며, 누구를 라이벌이라 생각할 수 없는 겨우 1년차일 뿐이라고 한다.

이번 벡스코 대회에서 결승에서 맞붙은 김경률 선수와의 경기를 가장 어렵고 기억에 남는다는 김진열 선수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김경률 선수의 가공할 만한 공격력과 두둑한 배짱은 배울 만 하다며 김경률 선수를 극찬한다. 연습에 몰두하다 머리가 아프고 할 때는 PC방을 찾는다는 김진열 선수는 컴퓨터 오락을 즐기는 컴퓨터 매니아 이기도하다. 오락을 1~2시간하고 나면 복잡하고 어지럽던 머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대회가 많아져서 좋지만 아직은 많은 선수들이 생계걱정에 많은 연습시간을 할애할 수 없으니 후원업체가 많아져서 선수들이 연습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김진열 선수는 김철민 선수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