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高大)꼬마 - 김관병 동호인

혹자는 나에게 “너는 당구를 왜 치느냐?” 라고 물어오곤 한다. 좀 더 좋은 직장에 좀 더 좋은 연봉을 받아 삶을 윤택하게 하라고 주문한다. 물론 그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삶의 질이란 단순한 연봉 수준이 아닌 삶에 대한 자기만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대학에 들어가면서 당구를 접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당구는 나에게 그리 흥미꺼리가 되지는 못했었다. 그냥 친구들이 가니까 당구장에 따라가는 정도였고 게임에 지기 싫어서 연습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한 후 다시 당구장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친한 형이 당구장을 하고 있어서 당구장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어느새 내 당구 치수도 300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주위 사람들 중에 아카데미를 다녀오는 사람, 당구를 배우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그들을 따라잡기가 벅차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마침 기회가 닿아 연당연(연기군당구연합회) 현 김종일 회장님을 찾아가 당구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드렸고 흔쾌히 받아주셨다.

당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에겐 너무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당구공이 굴러가는 게 느껴지면서부터 당구는 나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섰다. 한가지의 스트로크와 한가지의 시스템을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당구의 매력을 흠뻑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루 종일 연습만 하더라도 그토록 즐거울 수가 없었다. 밥 먹는 것조차 종종 잊어 버렸고 전공수업 시간에도 전공 책은 무거워서 못가지고 가도 큐가방은 항상 챙겨서 다녔다. 한 교수님께서 큐가방을 보시곤 무슨 가방이냐고 물어보셔서 당구 큐가방이라고 대답했다가 아주 오~랫 동안 설교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플룻가방이라고 대답한다.

당구에 빠져 있는 동안 학업을 조금 소흘히 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당구를 접고 공부를 하면서 1년이란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도서관에 있던 어느 날 당구가 너무 치고 싶어서 근처 당구장에 들렀다가 현재 국민생활체육전국당구연합회 이이석 사무과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다시 당구를 치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당구 때문에 휴학까지 해서 졸업시기가 친구들보다 늦어졌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당구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당구는 이제 나에게 휴식처이고 카타르시스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항상 당구를 치고 있을 땐 마음이 평온해지고 모든 근심 걱정들이 사라진다. 앞으로 직장 때문에 당구에 할애할 시간이 많이 적어지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 당구는 이미 나에게 취미생활이 아닌 내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난 당구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