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52
<중2 때 시작된 나의 당구사랑>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당구장을 운영하였다. 주로 어머니께서 당구장엣 머물러 계셔서 난 자주 당구장에 들리곤 했다. 오랫동안 무심하게 당구를 바라만 보았던 나는 중2 때 늦여름 당구공이 너무 예쁘게 다가왔다. 녹색 당구대 위에서 빨간 공이 굴러다니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인 그림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큐를 잡게 되었고, 정말 당구에 빠져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는 온통 관심사가 당구뿐이라 내가 세상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당구를 잘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 오로지 두 부류였다.
그 정도로 당구에 빠져든 나에게 고민이 찾아왔다. 아무리 당구를 쳐도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몸치라는 것을 처음 느꼈었고, 당구를 잘 치고 싶었던 나는 상당히 착잡한 마음이 들었었던 것 같다. 잘 치고 싶은 의욕과는 달리 공을 1미터 이상 굴리기도 힘이 들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 당시 누구에게도 당구를 가르쳐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구를 잘 치던 손님이나 일하던 오빠가 당구치는 자세나 브릿지 등을 유심히 봐 두었다가 아무도 없을 때 쳐보곤 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점점 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친 공이 제법 힘 있게 당구대 위를 굴러다니게 되었다. 포켓볼도 쉬운 공은 곧잘 포켓에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고1이 되던 해에 150점의 수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당구 사랑은 여기서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집에서 당구장을 팔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 2년을 열심히 당구를 사랑했고 어느 정도 실력도 쌓았으나, 내가 다시 당구장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당구가 그리울 때도 있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나에게 당구는 잊어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에게 다시 당구공이 눈에 띤 것은 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이다. 친구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려 포켓볼이나 4구를 치면서 나의 당구사랑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한번 잊었던 당구가 내 마음 속에서 맹렬하게 타올랐다. 당구에 할애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당구에 대한 열정만큼 실력이 부쩍 향상 되는 것을 느꼈고, 난 3쿠션의 묘미에 빠지기 시작했다. 올해 초 내가 자주 다니던 한솔당구장 사장님 권유로 처음으로 생활체육에서 주최하는 여자 3쿠션대회에 나갔다. 3쿠션을 치는 언니들이 의외로 많은 것에 놀랐고, 나의 첫 게임이 베스트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의 대회 첫 경험은 모든 경기에서 한 큐 한 큐 최선을 다하게 된 계기였다.
그동안 당구를 치면서 소중한 것을 포기한 적도 있고 “여기가 나의 한계인가보다.” 라고 생각 했을 때도 많다. “지금 이 수준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여기가 끝이면 어떻게 하지?”, “내 당구 나이가 빨리 어른이 되기를 ....” 하고 막연히 바란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습에 몰입해보려 한다. 그리고 대회에서 꼭 우승을 차지하여 성취감을 느껴보려고 한다. 나의 이런 당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교만과 자만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늘 다짐한다. 부족하지만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격려래 주시는 모든 분들께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서는 당구장을 운영하였다. 주로 어머니께서 당구장엣 머물러 계셔서 난 자주 당구장에 들리곤 했다. 오랫동안 무심하게 당구를 바라만 보았던 나는 중2 때 늦여름 당구공이 너무 예쁘게 다가왔다. 녹색 당구대 위에서 빨간 공이 굴러다니는 모습이 정말 환상적인 그림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큐를 잡게 되었고, 정말 당구에 빠져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는 온통 관심사가 당구뿐이라 내가 세상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당구를 잘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 오로지 두 부류였다.
그 정도로 당구에 빠져든 나에게 고민이 찾아왔다. 아무리 당구를 쳐도 실력이 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몸치라는 것을 처음 느꼈었고, 당구를 잘 치고 싶었던 나는 상당히 착잡한 마음이 들었었던 것 같다. 잘 치고 싶은 의욕과는 달리 공을 1미터 이상 굴리기도 힘이 들었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 당시 누구에게도 당구를 가르쳐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구를 잘 치던 손님이나 일하던 오빠가 당구치는 자세나 브릿지 등을 유심히 봐 두었다가 아무도 없을 때 쳐보곤 했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점점 손도 흔들리지 않고 내가 친 공이 제법 힘 있게 당구대 위를 굴러다니게 되었다. 포켓볼도 쉬운 공은 곧잘 포켓에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고1이 되던 해에 150점의 수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당구 사랑은 여기서 접을 수밖에 없었는데, 집에서 당구장을 팔고 다른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 2년을 열심히 당구를 사랑했고 어느 정도 실력도 쌓았으나, 내가 다시 당구장을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당구가 그리울 때도 있었으나 얼마 가지 않아 나에게 당구는 잊어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에게 다시 당구공이 눈에 띤 것은 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이다. 친구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려 포켓볼이나 4구를 치면서 나의 당구사랑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한번 잊었던 당구가 내 마음 속에서 맹렬하게 타올랐다. 당구에 할애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면서 당구에 대한 열정만큼 실력이 부쩍 향상 되는 것을 느꼈고, 난 3쿠션의 묘미에 빠지기 시작했다. 올해 초 내가 자주 다니던 한솔당구장 사장님 권유로 처음으로 생활체육에서 주최하는 여자 3쿠션대회에 나갔다. 3쿠션을 치는 언니들이 의외로 많은 것에 놀랐고, 나의 첫 게임이 베스트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의 대회 첫 경험은 모든 경기에서 한 큐 한 큐 최선을 다하게 된 계기였다.
그동안 당구를 치면서 소중한 것을 포기한 적도 있고 “여기가 나의 한계인가보다.” 라고 생각 했을 때도 많다. “지금 이 수준이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여기가 끝이면 어떻게 하지?”, “내 당구 나이가 빨리 어른이 되기를 ....” 하고 막연히 바란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습에 몰입해보려 한다. 그리고 대회에서 꼭 우승을 차지하여 성취감을 느껴보려고 한다. 나의 이런 당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교만과 자만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늘 다짐한다. 부족하지만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격려래 주시는 모든 분들께 좀 더 멋진 모습으로 보답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