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대면...

수능이 끝난 다음 해인 98년 1월 어느 날. 친구 따라 2건의 2:2 미팅을 하게 되면서 처음 포켓볼을 만났다. 큐 미스를 내던 그 순간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공의 무게와 힘이 큐에 그대로 전달되어 땅~! 하면서 포켓인 되었을 때의 느낌은 나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포켓볼! 확실히 첫 대면부터 호기심을 끄는 놈이었다.

매력적...

포켓볼은 작은 체구인 나에게 볼링공을 굴리기 위한 힘도, 탁구공을 치기 위한 빠른 스피드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막대기(큐) 하나를 주고, 정해진 두께대로 치기만 하면 되었다. 평소 정확도에 비해 항상 파워가 떨어지던 나에겐 찰떡궁합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 학창시절 좋아하던 수학과목처럼 대충 해서는 얻을 수 없지만, 정확한 지점을 겨냥하면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 한 마디로 매력적인 세계였다. 대학 4년간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포켓을 좋아하는 아이, 조금 잘 치는 아이 등으로 불리었고, 노래방 가자는 친구들을 설득해 가끔 대학가 당구장에 출입하곤 했었다.

일반인...

2002년 다음 까페를 뒤져 당시 방배동 재클린 클럽을 이용하던 포사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모두가 그렇듯, 처음 동호회에 나오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나의 실력에 비해 동호회 사람들의 실력이란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이었다. 첫 정모에 참석한 후 강습 신청을 하고 드디어 강습 날이 되었다. 도착을 하자마자 강습 선생님께서는 다짜고짜 “당구 쳐 봤어요?”라고 물었고, 난 속으로 “그럼~ 쳐 보기야 많이 쳐봤지.”하면서도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했다. 그러자 강습 선생님은“에이~ 됐어요, 그냥 큐 잡고 자세 한번 잡아 봐요.”라고 했고,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뒤이어 강습선생님 하는 말 “아~ 처음이구나.”

그렇다. 나는 동호인이 아닌 일반인이었던 것이다. 포사회 동호회에 가입하기 전, 동네 포켓볼 경력 4년은 무의미한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2달 정도 기본자세와 샷에 대해 배웠는데, 그때의 강습선생님은 포켓볼 동호인들 사이에 유명한 장건주씨였다.

트로피..

2006년 쉬었다가 다시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그 동안 고팠던 포켓활동을 왕성히 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동호회에서 나의 출석률이 가장 좋아졌고, 어찌어찌 하다 보니 하반기 운영진도 맡게 되었다. 아무래도 당구장에 자주 나타나다보니, 그동안 모르던 게임요령들도 익히게 되었고 가장 주요했던 건 핸디 9점자들의 게임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모든 스포츠에서는 이미지 컨트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던가. 고점자들의 게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스트록과 포지션 면에서 배운 점이 많아졌던 것 같다.

남자 친구가 대회 참가를 하는 동안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했던 나는 무슨 대회인지 어디에서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 채, 안양에서 열리는 국민생활체육 경기도대회에 참가 신청을 하였는데.. 덜컥 우승이라는 일생의 영광을 안게 되었고, 상금과 트로피까지 받았다. 나는 그냥 신이 주신 깜짝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날의 상황은 운이 좋다는 정도를 넘어섰으며, 나의 컨디션도 최상이었다. 일례로 4강에서 문진호선수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아주 얇게 쳐서 8번 공을 포켓인 시켰는데, 클럽에 돌아온 후 여러 차례 진지하게 시도해보았으나, 아직까지도 성공하지 못하였다. 아마도 초능력이 발휘되었나보다.

영원히...

올해 안에 무얼 하고 싶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활동 목표 같은 건 없다. 독한 맘먹고 오기로 한동안 열심히 연습하다가 포켓을 떠나는 사람, 괜찮은 이성이 있지 않을까 하며 시끌벅적 두리번거리다가 떠나는 사람들이 모두 다 떠나갔을 때에도 난 당구소식지에 나오는 실버동호인들처럼 오~래도록 영~원히 포켓볼을 <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