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볼 왕국
‘포켓볼 왕국’이라는 동호회도 있고 구장도 있었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진짜 포켓볼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필리핀이다. 지난 호에도 언급했듯이 필자를 포함한 우리 선수 십여 명이 필리핀 오픈 10볼 대회에 참가 했었고, 1주일간 필리핀에 머물며 느낀 것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실로 그곳은 포켓볼 왕국이었다.>
스테이지 1에 참가한, 필자를 포함한 9명의 우리 선수들이 대부분 필리핀의 무명 선수들에게 패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에 필리핀 선수들의 높은 기술력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분하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네들의 거대하고 수준 높은 인프라에 부러움을 느끼기도 하였다. 물론 필리핀 선수들은 홈경기의 어드벤티지가 있긴 하지만 그를 감안하더라도 그들은 강했다.
놀라운 것은 동네꼬마 같은 어린아이나, 옆집아저씨 같은 느낌의 선수들도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그런 선수들이 샐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이다. 필리핀의 포켓볼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 있긴 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심정은 새삼 인상적이었다. 식민지 시대의 문화적 영향과 ‘에이프런 레이어스’라는 히어로 등의 여러 가지 호재가 그들을 오랜 동안 발전 시켰을 게다.
<포켓볼 왕국에는 에이프런 레이어스라는 왕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레이어스가 상주하며, 많은 선수들이 찾는다는 '원 사이드' 라는 당구장은 찾았다. ‘말라테라’는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한 일본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지역 상권을 미루어 볼 때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운영 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녁이면 빈 테이블은 물론 앉을 자리 조차 없이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원 사이드를 찾은 첫날 우리 일행이 일찍 도착한 탓에 당구장 문이 아직 열려있지 않았는데, 그때 문 앞에 앉아있는 ‘포켓볼 왕국의 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주변에서 ‘레이어스’를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렸고 그들은 연신 'Magician!' 을 외치며 그를 칭송하고 있었다. 얼마 후 문이 열리고 우리 무리는 당구장 안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레이어스의 아들, 그리고 제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온 한 선수는 체스를 두느라 여념이 없는 그를 기어코 일으켜 게임을 요청하였다. 그곳은 왕국의 왕이 사는 궁궐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보였다.
<필리핀 오픈 10볼 대회는 아시아의 강세로 마감되었다.>
현 10볼 세계 챔피언 독일의 ‘데런 에플튼’과 세계 랭킹 1위인 ‘랄프 수케’ 등 미주와 유럽의 강자들이 대거 참가한 이번 대회에는 4강의 네 선수가 모두 아시아 선수였다. 홈인 필리핀 선수가 2명이었고, 대만과 인도네시아 선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중 다소 약하다고 평가되어 오던 인도네시아의 리키 양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약간의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김웅대, 정영화, 김희섭 선수가 스테이지2 본선에서 선전하였으나, 아쉽게도 리키 양과 같은 파란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곳의 거리에는 동냥을 하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참으로 안스러워 보이는 어린아이에게 동전 한 닢이라도 쥐어주면 순식간에 수십 명에게 둘러싸이는 난감한 상황을 만난다고 한다.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뒤쳐진 환경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지만, 포켓볼의 실력과 인프라에 한해서는 필자가 동냥이라도 하고 있는 듯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함께 간 선수들 중 국제대회에 처녀 출전한 선수들, 그리고 고교생 선수들의 선전이 단지 위안을 줄 뿐이었다. (018-387-1506)








